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대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 이후 == * 선거 직후 [[6.25 전쟁]]이 발발하여 [[대한민국 국회|국회]]도 피난을 가게 되었으며, 이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정보를 늦게 받거나 수도 사수 등의 명분으로 붙잡혀 납북된 의원[* 이때 북한에 납치된 의원들의 가족이 월북자 취급을 받아 수모를 겪기도 했다.]도 있다. 대표적으로 납북된 의원은 당시 경기도 [[평택시|평택군]]이 지역구였던 민세 [[안재홍]]을 비롯해, [[조소앙]], [[원세훈]], [[윤기섭]] 등이 있다.[* [[https://blog.naver.com/darkn/221891464856|여기 블로그]]에 당시 국회의원 명단과 함께 행적들이 적혀있다. 특히 성명에 붉은 표시를 한 건 '친일 행적'이 있는 사람들이니 살펴보길 바란다.] * 휴전 협정의 결과 일부 의원들의 지역구는 전체 혹은 대부분의 지역이 북한령이 되었는데, [[옹진군(황해도)|옹진군]] '갑' 선거구는 [[백령도]], [[대청도]]만 남았고 옹진군 '을' 선거구는 [[연평도]]만 남았으며, [[연백군 갑]], [[연백군 을]], [[개성시(선거구)|개성시]], [[개풍군(선거구)|개풍군]]은 완전한 북한령이 되었고 [[장단군(선거구)|장단군]] 선거구도 남은 지역이 [[민간인 출입통제선|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]] 주민이 없었다. 옹진군의 경우 선거구를 개편하여 단일 선거구로 다음 선거를 치르는 안도 논의되었으나 무산되고 이들 지역의 국회의원은 자리가 없게 되었다. 결국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를 치를 수 없는 이들 지역의 국회의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권이 발동되었다. 이 때문에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는 이들 선거구를 뺀 나머지 203석의 국회의원만 선출하게 되었다. 반면에 전쟁 이후 [[수복지구]]의 경우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부터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었다. * 선거하고 한 달도 안 되어 [[6.25 전쟁]]으로 관공서가 불타면서 선거와 관련 기록이 없어진 선거구가 많다.[* 당시에는 선거를 [[내무부]]가 주관하고 각 시, 군청이 진행했으므로, 선거 관련 자료도 모두 각 행정기관에 있었다. ] 후보가 몇 명이고 당선자가 몇 표를 얻었는지까지는 언론사의 보도 자료로 확인할 수 있으나, 유권자 수, 투표자 수, 각 후보별 득표와 무효표 수는 확인할 수 없다. 주로 접경지였던 경기도와 강원도의 선거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.[* [[제1대 국회의원 선거]] 때에는 [[4.3 사태]]의 여파로 제주도 선거구 세 곳의 선거 관련 기록이 사라졌다. 그나마 북제주군 갑, 을의 두 선거구는 1948년에 투표율이 50%에 미달하면서 무효가 되어 1949년에 치른 재선거의 자료가 남아있지만, 1948년에 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는 남제주군 선거구에서는 모든 자료가 사라져 언론사의 보도 자료로 남아있는 후보자 세 명의 이름만 확인할 수 있다.] * 2013년 4월 18일 2대 국회의원의 마지막 생존자인 [[김인선(정치인)|김인선]] 씨[* 선거구는 [[북제주군]] 갑. 현재의 [[제주시]] 동 지역과 조천읍, 구좌읍, 우도면에 해당된다.]가 죽으며 2대 국회의원들은 모두 별세하였다. [[분류: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]][[분류:1950년 선거]][[분류:이승만 정부]][[분류:제2대 국회의원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